“아름답게 피었습니다.” 아메 서머터지는 늘 검을 들었다. 지나간 자리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을 누군가의 육신에서 따뜻하게 흘렀을 무언가의 흔적이 흙바닥을 타고 흘렀다. 흙은 빠르게 흔적을 삼켜내고 어둡게 검은 망토를 둘렀다. 한가득 피를 마셔버린 땅은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여신께서도 싫어하시겠지만, 그것도 모두 큰 뜻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것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선혈이 낭자 하는 길. 기도하는 손은 아름다울지언정, 하이얀 코트 끝자락에서 검을 든 그의 뒷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그것이 아메 서머터지가 걸어가는 길이였다. 철저하게 다른 곳으로 빠지지 않도록. 다른 생각을 품지 않도록 계속해서 자신을 되뇌길 반복한다. 찬양하라, 신성의 힘을. 버텨봐요. 이 환상을…. “꽃이 참 예쁘게도 피었..
이전에는 꽤 많은 인간이 찾아왔습니다. 꽃을 엮은 머리띠며, 초를 띄운 종이배. 들고 온 공물들을 띄우며 들릴 듯한 목소리로 제각기 소원을 비는 것을 멀찍이 구경하는 일도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맑은 물이 흘렀고, 수면에는 깊은 바닥까지 투명하게 보였습니다. 죽어버린 탁한 물보다는 깨끗한 물이 오히려 투명하기에 얼마나 깊은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생명 하나 살지 않는 이곳에는 오가는 발길이 만들어낸 작은 길과 지나간 자들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전부 옛이야기지만….” 그렇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옛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세상은 변했습니다. 숲에서 이곳으로 지나오며 자박거리는 발도 끊겼습니다. 초목은 길을 덮었고, 기도문을 외며 신을 찾는 자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
5월 X일오월입니다. 비가 내리는 날도 있었지만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는 것을 몸으로도 느껴집니다. 고개만 내밀던 싹은 받아마신 물에 힘껏 기지개를 켰고, 예전에 함께 심고 네가 걷어둔 씨앗이 또다시 꽃으로 돌아왔습니다. 분명 피어난 꽃을 보면 당신은 이름을 부르며 좋아했겠지만 나는 당신처럼 꽃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는 아니기에 그저 피었다는 사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어느 정도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자리를 잡는다면 몇 송이를 따로 화분에 담아 만나러 가는 날에 들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책만 본다고 여신님이 찾아오는 거도 아니잖아요”툴툴거리는 당신의 말에 결국 나는 인상을 찌푸립니다. 텁, 두툼한 종이뭉치 소리를 협탁 위에 올려두고 한껏 힘이 들어간 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