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가여운 존재들을 위하여 초점 없는 눈동자는 손을 내밀었다. 길을 걸어가는 이들에게 필연적으로 맞이할 죽음 가까이에서. 그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조용히 방향을 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베풀 수 있는 선행인지, 어떠한 이유로 그러한 일을 자처하는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참으로 이질적인 존재였다. 형태를 가지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거쳐 가는 손길마저 흔적이 남지 않는 기이한. 죽어버린 호수는 물소리마저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맑게 흐르는 물가가 아닌 암녹빛의 탁한 수면. 제 깊이를 알지 못하고 발을 디디는 순간 끝도 없이 가라앉아버릴 테지. “헤르셔.” 나는, 그곳에서 빠져 죽고 싶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그곳에서 제 몸을 던지고 사방이 죽어버린 너로 가득 채우면. 필시 행복..
“언제든 찾아와도 상관없어요.” 나는 호수,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게 열린 하늘 아래 펼쳐진 둥글게 쏟아지는 달을 비추며 맑게 반짝이는 은빛의 또 다른 하늘의 이름. 에브루헨 아모치온, 마지막까지 ‘그들’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나 하나의 의지로 선택한 신의 피조물. 엇갈린 선택의 갈래에서, 여신을 따르는 내 사랑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나는 내 의지로, 끝을 맞이하고 싶어요. 툭, 던진 말에 아메 서머터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인간 놀음에 물들여서는 네가 진정으로 인간이라고 착각하는 건가요? 헛소리도 이제는 정도를 넘어섰군요. 고운 얼굴에 주름을 만들며 예상할 수 있는 말들이라 생각하며 어떤 말을 하더라도 받아낼 것이라 다짐했습니다. 그는, 아메 서머터지는 오직 사명만을 생각하던 사..
서로의 온기가 맞닿던 순간, 나는 입을 뗄 수 없었습니다. 항상 불러주던 이름도, 안아주던 포옹도 할 수 없었습니다. 더없이 고요하고 가라앉습니다. 이곳은 어두운 밤바다, 마지막까지도 더없이 행복한 추억만을 안고 가더라도 뼛속까지 시려오는 냉기에 온몸을 덜덜 떠는. 상실의 순간이 더욱 아프고 생살이 찢기는 고통으로 다가오는 곳입니다. “어땠어요?”나는 덮치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질문을 건넸습니다. 따뜻한 온기가 식는 동안,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마음껏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음껏. 나누어보도록 해요. 입을 연 순간부터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것이라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부터 ‘기대’라는 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