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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에브_꽃]

✿달꽃 2018. 7. 5. 01:15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아메 서머터지는 늘 검을 들었다. 지나간 자리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을 누군가의 육신에서 따뜻하게 흘렀을 무언가의 흔적이 흙바닥을 타고 흘렀다. 흙은 빠르게 흔적을 삼켜내고 어둡게 검은 망토를 둘렀다. 한가득 피를 마셔버린 땅은 모든 존재를 사랑하는 여신께서도 싫어하시겠지만, 그것도 모두 큰 뜻을 이루기 위하여. 모든 것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선혈이 낭자 하는 길. 기도하는 손은 아름다울지언정, 하이얀 코트 끝자락에서 검을 든 그의 뒷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그것이 아메 서머터지가 걸어가는 길이였다. 철저하게 다른 곳으로 빠지지 않도록. 다른 생각을 품지 않도록 계속해서 자신을 되뇌길 반복한다. 찬양하라, 신성의 힘을. 버텨봐요. 이 환상을.

 

꽃이 참 예쁘게도 피었습니다.”

 

신성한 기도와 따뜻한 피와 흩어진 살점들 흐르는 길. 발아래 질척이는 잔해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아메 서머터지를 안아주는 사랑도 존재했다. 깊게 팬 우물에서는 밑바닥에서 사랑으로 차오르는 우물물이 찰랑대는, 순박한 소년처럼 해맑은 미소. 유대와 신뢰를 찬란하게 빛내며 노래하는 엷은 에메랄드꽃은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에브루헨 아모치온은 언제나 아메 서머터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피가 흐르는 손에는 자신의 손을, 검을 쥐고 있는 손길에는 꽃을 들려주었다. 아직 아름다운 것들을 보지 않았죠? 그러지 않았으면서 이런 것들을 보기에는 시간이 아까워요. 가끔은 이런 것도 너에게는 필요해요.

 

볕이 따뜻한 날, 꽃이 참 예쁘게도 피었습니다.”

 

아메 서머터지는 꽃을 들었다. 하늘거리는 꽃잎은 이미 바람에 이기지 못하고 몇 장 뜯겨나갔다. 얼마나 오래 쥐고 있었는지 척 보기만 해도 줄기는 숨이 죽어버린 듯했다. 발 언저리에 똑같은 꽃은 채일 만큼 많이 피어있거늘 새로이 꺾지 않고 더욱이 손에 힘을 주며 꽃을 들었다. 검을 투영시키던 손에는 꽃을, 엉겨 붙은 채 말라버린 검붉은 얼룩이 묻은 손에는.

 

함께 보고 싶어 하길 원했던 풍경이건만.”

내게 내어줄 손이 없습니다. 에브루헨 아모치온은 더 이상 웃을 수 없습니다. 힘을 주어 깨뜨리기 쉬운 투영검도 아닌 것이, 단단할 것이라 생각했던 에메랄드꽃은 말 그대로 보석처럼 반짝이는 연약한 꽃잎에 불과했습니다. 바람에 뜯겨나가 볼품없이 고개를 손등 위에 얹어 바닥을 보고 있는 꽃처럼. 너도 이렇게 연약했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던 너에게는 결코 어울리지 않았을 길을 함께 걸으며 과연 행복했을까요?

 

미안합니다.”

에브루헨 아모치온, 미안합니다. 이제야 이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손에 꽃을 들려주며 나에게도 필요할 것이라 말하던 뜻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너는 내 앞에서 더는 웃지 않습니다. 아니, 웃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한 번만 내 앞에 나타나 이름을 불러줄 수 있습니까?

아름답게도 피었습니다. 아득하니 먼 하늘은 깨끗하고 볕이 따뜻한 날, 꽃이 참 예쁘게도 피었습니다. 함께 보고 싶어 하던 풍경이었건만, 이것을 가장 그리워하는 이는 볼 수가 없습니다. 되돌아오기는 너무 늦은 시각입니다. 이미 뜯겨나간 꽃잎 몇 장에 사랑한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편지로 써서 붙이기에도. 바람은 너무 오래 흘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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