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식의 흐름 多 * “어머니의 뜻을 위하여.” 세상 어디를 돌아다녀도 이렇게 맑은 바다를 볼 수 있겠는가? 아니, 바다가 아닌 이것은 하늘인가…? 호수? 수면 위에 한두 송이의 꽃을 띄운 채 멈춰버린 시간을 즐기는 물빛 호수? 꽃이 만발한 풍경이 유난히 아름답던 날. 잔잔하게 내리 쬐는 햇볕이 포근하던 날. 그는 영겁의 세월 동안 가장 깨끗한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빛에 따라 출렁이는 수면은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했다. 만약 저곳에 빠진다면 나도 맑게 빛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손을 뻗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그 높이에 눈이 시렸다. 닿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등을 타고 짜르르 전율이 되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자신은 셀 수 없이 ..
* 의식의 흐름 多 * “감정이란 신이 주신 가장 위대한 힘이에요.” 어느 날, 너는 나에게 다가왔다. 급하게 오지 않았다. 봄볕이 따뜻하게 모든 것을 비추던 날. 꽃이 피어나는 그 걸음마다. 부드럽고 포근하게. 너는 나에게 다가왔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꽃봉오리는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끝을 알 수 없는 물빛 바다 위로 치켜든 하나의 꽃은 둘로 셋으로. 점점 많아지며 바다 위 수면에 자신의 얼굴을 빠끔 내밀어본다. “내 이름은 에브루헨 아모치온.” 탁. 아아— 절정을 맞이하였구나. 꽃이여. 부풀어 오른 꽃봉오리는 다섯 장의 꽃잎으로 스러지며 진정한 자신을 드러냈다. 보드레한 향을 바람길에 실어 보낸다. 나를 찾아주련. 향기를 타고 멀리 퍼지라고 말하는 듯. 어여쁘지 않은 것들이 ..
* Narea - 호랑수월가 * 찌르르. 울어대는 풀벌레도 유달리 조용하다. 세상의 소리가 사라진 날, ‘그’만을 위한 날. 수면 위에 떠오른 또 다른 달은 바람길에 휘청이는 수면에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수면에 비친 달, 그리고 새벽에 덮여버린 맑은 또 다른 두 개의 하늘에 담긴 달. 에메랄드빛 보드란 따스함이 져버린 잠든 시간 속 숨어버린 어두운 면. 얼핏 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휘어진 특유의 눈웃음은 해칠 기미를 드러내지 않았다. 눈꺼풀을 닫아 맑은 하늘을 가린다. 가만히 눈을 감는다. 녹음이 품고 있던 서늘한 기운이 뺨을, 바짓단을 걷어붙인 다리 사이로 소르르 지나간다.볼우물을 살며시 걷어내고 살며시 입을 뗐다. 흐르는 저 하늘을 물어 채는 범처럼태산에 날아들어 숨어드는 새처럼동산을 뛰고 ..
* 의식의 흐름 多 * 찌르르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 산자락에 걸친 해는 천천히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붉게 토해지는 핏빛 발악은 온 하늘은 물론, 그의 뺨과 하얀 코트에도 붉은 자국을 수놓았다. 보드레한 노란 꽃밭도 삽시간에 불그스레 물들고, 바람길에 위엉청 꽃잎 한 줌이 하늘로 올라갔다. 손 자락에 쥐어 든 화관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머리 위에 쓰이더라도 의미 없는 물건.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불필요한 수고’를 들여서 만들어낸 물건. 어느샌가 이곳에서 오면서 생겨버린 버릇이었다. 수줍게 고개를 내민 채 노르스레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작은 꽃 한 송이. “….” 쥐어뜯어 내고 싶었다. 짓이겨 잎에서 물이 나올 정도로. 잡고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 을 정도로 으깨버리고 싶었다. 어째서. 여기 있는 ..
* 의식의 흐름 多 * “아메…. 졸려요.” “인간처럼 쓸데없는 행동을 따라 하더니, 이제는 네가 인간이라 착각하고 있는 겁니까?” “…헤에. 나, 조금만 잘게요.” 정말. 아주 약했다. 너무 미미하게 작은 변화였기에 알아차리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자만했던 탓일까. 나 스스로는 그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찢어버리고 싶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점점 감기는 눈꺼풀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어지간히 게으름을 피우라고 화살을 쏘았다. 방패막이 없이 화살을 맞은 에브루헨은 대답 대신 배시시 웃어 보이며 눈을 감았다. 그것이 바보 같은 한 마디가 되어 마음 한구석 아주 깊은 곳에 쌓이게 되는 것도 모른 채. * 모든 것들이 다 평온했다. 적어도 대륙의 ‘그..
* 의식의 흐름 多 * “….” 언제나 너는 평온했다. 나를 향해 나지막이 웃어주던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많은 것을 떠올리게 했다. 햇볕에 비치는 잔잔한 수면, 손을 뻗으면 휘익 잡힐 듯한 얇디얇은 녹빛의 하늘의 그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행복감에 항상 밖으로 넘쳐흐르던 우물도. 망설임 없이 뻗어주던 가느다란 손도. 변함없이 밝은 모든 것에 나는 생각했다. 아…. 사랑받는 아이여. 이스마엘의 사랑이 현세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과연 너와 같은 모습은 아닐까? 모두에게 마음을 열고 신뢰를 얻는 너에게는 모든 것들이 시작이며 행복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망가지는 일도 쉽게 일어나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에브루헨.” 바람길에 섞은 노랫소리는 기적을 부르고, 지친 육신에는 휴식을 불러주..
* '자책'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 http://luvredspirit.tistory.com/4 “나 때문에. …내가 너를. …힘들게 만들었지?” 때 묻지 않은 꽃을 손에 쥐고 있었다. 훅,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얇디얇은 꽃잎이 찢어질세라 조심스럽게 품었다. 활짝 핀 꽃을 바라보며 웃을 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어느 꽃보다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했다. 꽃은 펴보지도 못한 채 꺾였다. 다름이 아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어디까지나 검게 먹혀버린 태양 혼자만의 생각일 뿐, 정확히는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 꽃을 탐내던 수많은 손이 꽃을 망가뜨렸을 뿐. 어이없게도. 꽃은 마구 헤집어놓으려 뻗어대는 손길에 피워보지도 못하고 찢겼다. 그는 사실을 바라보지 않고 꽃을 향해서만 시선을 고정했다. 빗발치는 ..
* 의식의 흐름 多 * “….” 무언가 이상했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하루였다. 그의 세상이 멈췄다. 에브루헨 아모치온의 세상의 중심에서 돌아가던 시곗바늘은 꺾여버린 채 시침만이 틱틱거리는 소리와 함께 의미 없는 움직임만 보였다. 아메 서머터지. 기적을 부르는 빛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에게 아메 서머터지의 존재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신의 서약과 엘리오스에 널리 퍼져있는 엘의 힘, 그사이에 머무르며 조화를 노래하는 자신과는 성향이 완전히 달랐기에 그는 더욱 눈에 들어왔다. 엘리아를 섬기는 사랑스러운 어머니의 현신. 그녀의 의지를 실행시키기 위하여, 그녀의 검으로 살아가는 유리 인형. 여러 각도에서 비춰보면 각양각색의 빛을 발하던 고고한 존재.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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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식의 흐름 多 * “…쯧.” 짧게 혀를 찼다.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두 개의 주사위는 그의 손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빛을 계속 바라보고 있자니,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으로 끌려가 버릴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였다. 이질적인 푸른 빛.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가면 속의 호박색 눈동자는 따분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시간을 죽이며 무료함을 달래는 지루한 세월의 나날들. 참으로 의미 없는 시간이었다. 작디작은 큐브 한 칸의 공간 속에서. 그곳이 전부가 아님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존재들이 참으로 딱하게 보였다. 나는 이렇게 따분한데. 이렇게 나의 재미를 채워줄 존재는 진정 없는 것인가. 시선을 위로 올렸다. 허공을 떠다니는 헤니르의 조각들. 그리고 손에서 놀아나는 주사위와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