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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에브아메_살아남다]

✿달꽃 2019. 3. 31. 22:19

.”

 

어김없이 호선을 그리던 입가의 미소, 휘어지는 눈꼬리도 접은 채, 한 떨기의 꽃은 가느다란 팔로 들고 있던 펜을 떨구었다.

꽃은 살아남았다. 옅게 틔워오는 햇볕을 향하여 고개를 들고,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웃을 수 있고, 슬픔에 젖어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다. 다른 존재들처럼 생생하게 이 땅에서 살아있었다. 잔혹하리만치 아름답게, 꽃은 살아남아 아직도 어여삐 피어나 있었다.

 

가느다란 투영검을 빼어 들며 질척이는 핏길을 함께 걸었다. 아무도 걷지 않을 길, 진창같이 구르는 따가운 매 순간을 기도 삼아 피조물을 빚은 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였다. 꽃은, 에브루헨 아모치온은 언제나 그의 뒤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은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푸른 유리 인형. 아아, 아름다운 유리인형. 언젠가 자신이 이곳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가 같은 사명을 받고 내려와 해결해줄 것이라는 무모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만큼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보드라운 살결은 언제나 상처에 무구를 쥐며 단단하게 박힌 굳은살로 하나둘 늘어갔다.

마지막의 순간에서 꽃은 검의 손을 겹치며 이마를 마주하였다. 사라지는 것은 슬프지만, 그래도 너와 함께라서 다행이에요. 빛을 품고 있던 연약한 육신은 찬찬히 부서지며, 곧 맞이할 끝이 무서운지 눈을 꼭 감았던 것이 기억의 끝.

 

 

활자 속의 시간은 아름답고 행복했다. 더는 아름다운 색을 목소리에 담아 노래할 수 없는 조화의 꽃은 살아남은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 속은 아직도 물빛 하늘이 아름다운 호수가, 환하게 웃는 제 미소에 서툴게 얼굴을 붉히며 눈을 피하던 사랑이, 지금은 함께 할 수 없는 자신의 사랑이 숨 쉬고 있었다. 생생하게 묘사를 입으며, 문단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꽃은 계속해서 색을 입혀갔다. 무채색의 희멀건 세상 속에서 와 함께했던 시간만큼은 알록달록한 색상이라는 걸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듯, 색상을 입히기 바빴다.

유리 인형은 부서지고, 꽃은 어여삐 피어 이곳에 남았다. 사라지는 것이, 자신으로부터 스쳐 지나간 모든 이의 기억 속에서 죽는 것이 두려워 아이처럼 엉엉 울던 제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자신을 살려준 이유가 무엇인지 물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먼 곳으로 떠난 제 인연.

 

네가 나를 살려준 거잖아요. 그렇죠?”

 

살아있었을 적, 여신과 함께하고 싶다던 자신의 사랑은 하늘 위로 올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빛이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완벽한 아메 서머터지조차 알 수 없을 것이다. 조화와 공존을 노래하며 아름답게 빛나던 꽃은 자신이 있었기에 더욱이 빛을 발했을 것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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