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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퍼아인_결말]

✿달꽃 2018. 12. 1. 21:05

이제는 정말 여한이 없어요.”

 

가느다란 손은 언제나 하늘을 향했다. 제 몸을 빚어준 존재가 건네준 뜻을 펼치기 위하여 길을 열었다.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유리 인형은 잘박거리는 진창을 걸었다. 칠흑 같은 밤,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서슴없이 걸었다. 언젠가 자신이 사라지더라도 또 다른 피조물이 같은 길을 걸으며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제 몸을 아끼지 않았다. 이름을 부르며 기꺼이 등을 맡길 수 있도록 곁을 내어주는 동료, 어느새 세상의 근원과 연결된 기사와도 물들며 매일 밤 소리 없는 언쟁을 벌였다.

 

인간에게 물든다면 일을 그르칠 것이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조금 더 함께 머무를 수 있다면 뜻을 이루더라도 결말이 달라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저도 모르게 생겨버린 이질적인 요소가 마음이라는 곳 한 쪽에 자리 잡았다. 발을 잘못 디디는 날에는 곧장 자신을 잃어버릴. 고요한 아우성 속에서 신관은 머리를 감쌌다.

 

.”

 

머리는 차갑게 결정을 내렸지만, 가슴이 쓰라렸다. 가슴팍을 움켜쥐어도 욱신거리는 통증에 신관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

 

 

무심한 표정을 차마 더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기사를 힘들게만 만든다는 것은 익히 신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런 자신이 싫다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붙잡는 손은 힘을 실었다. 짙어지는 옷자락의 주름이 떨어지는 물기를 빨아들였다.

 

너도 알고 있지 않아요?”

.”

웃어요.”

 

기사는 결코 신관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떠나려는 자신을 계속해서 끌어안으며 죽지 말아라, 부디 살아라, 살아줄 것을 외치리라.

이 삶에 흔적을. 어차피 뜻을 이룬다면 모든 이에서 사라질 결말. 자신이 이곳에 그들과 머물렀다는 기억할 사람은 아무도. 지금 제 몸을 끌어안는 기사도 곧 깨져버릴 육신이 스러진다면 나를 잊어버리겠지? 나는 여기에 미련을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끝까지.”

, 흐윽.”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깨져가는 유리 인형을 끌어안은 기사가 무너져 내렸다. 죽어가고 있던 소리가 꺽꺽대며 살아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한 맺힌 울음이 울려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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