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미 불명 * “이 꽃이 왜 아름다운지 알아요?” “….” 유리 인형은 말이 없었다. 표정이며, 펜듈럼을 쥐고 있는 가느다란 하이얀 손마저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 블루헨은 자신을 가리키며 눈꼬리를 휘며 리히터를 향해 웃어보였다. 더욱이 자신을 보라는 듯, 환하게. “모든 꽃은 예뻐요. 그렇지 못한 것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로. 그중에서도 제일 예쁜 건 나에요.” “에브루헨 아모치온” “…옛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네요.” “이제, 인간 놀음은 그만 두세요.” 인간 놀음. 블루헨은 펜듈럼을 손목에 묶고는 활짝 피어난 아이트를 톡톡 두드리며 손장난을 쳤다. 명백히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 리히터를 흘긋 쳐다보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드러내는 도발에도 리히터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블..
“모든 일이 끝난다면” “응?” 기사는 한가득 욱여넣고 있던 빵을 입에 문 채 신관을 바라보았다. 열셋의 나이에서 훌쩍 커버렸지만, 곳곳에 남아있는 어린 소년의 모습에 신관은 미소를 지었다. 신관은 기사에게 천천히 먹으라는 듯 손을 흔들었고, 알겠다는 웅얼거리는 말과 함께 몇 번 씹지도 않고 꿀꺽 삼켜내고는 기사는 가슴팍을 두드렸다. 그의 모습에 신관은 천천히 먹으라고 했잖아요, 라는 말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잠깐 끊었던 말을 이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난 후의 일상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갑자기 그 질문은 왜?” 기사의 질문에 신관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주 보는 눈동자가 똑같이 깜빡였다. 예상치 못한 반응인 듯, 신관은 눈동자를 구석으로 도르륵 굴리고는 볼을 긁적였다. “갑자기라..
푸르게 젖은 호수에 둥둥 몸을 띄웁니다. 생명 하나 살지 않는 이곳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아무도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거죠. 다른 이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지만 소중한 것은 나만 보고 싶다는 마음에 빗장을 걸고 꼭꼭 숨겨둡니다. 이것은 오직 나만의 것. 결단코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만 허용되었으면 하는 작은 욕심이자 바람. 오랜 시간 몸을 던져도 차가워지지 않습니다. 활짝 웃으며 볼우물을 패여 냅니다. 그리고 호숫물을 가득 담습니다. ‘맑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입니다. 나는 너에게 완전히 내 것을 내주었습니다. 너에게 빠졌습니다. 말이란 전하지 않는 한 상대방이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정확히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네가 이것을 보고 있는 글 또한, ..
“키우던 것이 죽어버리면 다들 슬퍼하잖아요.” 그만큼 애정을 들이고 눈길을 쏟아주었으니 슬플지언정 죽음을 맞이하는 당사자는 분명 행복할 거예요. 죽은 존재에게 말을 걸어서 대답을 요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지만, 그 심정이 얼마나 간절하면 이제는 식어버린 몸을 붙들고 울면서 갈라져 쉬어버린 목소리를 뱉어내겠나요?분명 그 파도는 오래갈 것이 분명합니다. 쌓아 올렸던 것들을 휩쓸어버리고 축축이 젖은 땅 위에서 눈물을 떨구면서 소리 내 울 것은 분명합니다. 소중히 여기던 것을 하루아침에 잃었기 때문에 웃으면서 기뻐할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작고 미미한 생명이라도 같은 것을 느낍니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그렇습니다. “내가 죽으면 울어줄 거죠?” 서머터지, 너는 어떨지 궁금합니다. 내가 사랑하..
“너는 무엇이지.” 귓가에서 계속해서 맴돌던 목소리의 질문. 귀를 틀어막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도 보았다. 네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냐. 나를 믿거라, 너는 무엇이지? 모두 끝을 맞이하고 소멸하는 것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느냐. 늘 한 손에 쥐고 있던 무거운 사슬을 지금은 풀어헤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신의 개가 아닌 ‘조화’라는 것을 택하던 그 녀석은 이것을 자유라고 말하던가. 자유라는 것은 가볍고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답답하게 옮아 매던 짐을 풀어헤치고 처음이자 지금 이 순간만 맛볼 공기.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건너기 전, 마지막으로 느껴보는 그 녀석과 공유하는 듯했다. 이것이 네가 느끼던 것이로군. 나도 자유라는 것을 느꼈다. “너는, 무엇이지?”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모든 것은 ..
계절마다 피어난다. 걸어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온기는 모두 지난날의 차가운 바람을 받아 마시며 참고 있던 숨을 토해냈다. 네가 가지고 있던 이것을 나누어줌으로써 또 새로이 시작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구나. 한 송이마저 소중하지 않은 꽃은 없었다. 모두 잎사귀 위로 내려앉는 시린 결정을 껴안으며, 차가운 바람에 저도 모르게 고여 버리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어여삐 피어났겠지. 포근하고, 보드라우며,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것들이여. 땅 위를 걷는 신이 빚어낸 고운 인형. 그는 제가 가진 향을 찾아내 숲의 하늘을 눈동자에 담고 반짝였다. 그리고 마주한 옅은 분홍 꽃비 속에서 찾아낸 자신의 또 다른 의미를 찾았다. “여기 있었나요?”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요. 아메, 네가 맑은 호숫가에 몸을 숨겼나, 그렇게..
“내가 문제 하나 낼까요?” 여느 날과 다름없이 따뜻했던 조각 일부분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그것은 깨져버린 파편의 마지막이며 빛마저 희미하여 잊어버릴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둥둥 떠버린 이것들을 해치워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건드리면 크게 데일 쪽은 날카로운 조각이 아닌 그것을 만지는 자신이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차라리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 생각이야 나버린 것까지 막을 수는 없지만, 평소처럼 흘려보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그런 식으로 자신을 다독였다. 여기 있는 조각은 분명— 아아, 그래. 분명 그때 신관은 문제 하나를 냈었다. 손에 잡을 수 없으며, 상대방에게 전하기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이것. 때때로, 이건 목을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는 문제였던가? 기사는 인상을 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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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날리는 바람에 출렁이는 꽃 바다의 가운데서 몸을 던진 너는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은 장소. 오직 너에게만 허용된 비밀의 장소. 아니, 사실 수평선 너머까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게 드리워진 이곳은 너를 보며 하나둘 피워냈던 꽃들이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은 이곳에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곳에서 너를 만나길 간절히 바랐다. *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해요.”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하고, 들켜버린다면 두근거렸다. 몸을 타고 흐르는 피라는 피는 한곳에 몰려버린 것처럼 뜨거워지면서. 어떻게 하길 바라는 것은 아닌데…. 이리하고, 저리한들 혼자서 심술만 잔뜩 나버린 채 신발코로 흙바닥만 긁어 작은 모래성만 만들어버렸다. 어린아이도 아닌 것이…. “너는 ‘이것’을 알..
"그래요, 이게 우리가 정한 결말이죠?” “모두 사라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처음으로 네 의견에 동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에브루헨은 고개를 끄덕였다. 뜻을 내세우며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선택지도 있었다. 하물며 품에 사랑하는 사람을 안으며 눈을 감는 방법도. 모두가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로 끝나지 않는 동화의 마지막 페이지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명백한 사실이었다.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아포스타시아도, 에브루헨 아모치온도 모두 알고 있을 변하지 않을 진실.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동안 함께해서 좋았다는 말과 더불어 소소하게 일상 속에서 불만이 있었다거나 아쉬웠던 이야기…. 에브루헨은 여느 때보다 고개를 활짝 들춰내고는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내가 채소볶음은 잘했는데 너는 매일..